1981년, MBC 개그 콘테스트를 통해 데뷔한 이상운은 이른바 '메기병장'으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KBS ‘유머 1번지’의 인기 코너 '동작 그만'에서 능청스럽고 뺀질거리는 병장 연기로 큰 화제를 모았다.
유행어를 남기며 CF 모델로까지 활약했고, 개그맨으로서는 보기 드문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무대 위의 유쾌한 모습 뒤로, 인생은 굴곡의 연속이었다.
아버지가 개그맨이라는 이유로 아이들이 학교에서 놀림을 받자, 이상운은 결국 큰 결단을 내렸다.
가족들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고 자신은 한국에 남아 기러기 아빠 생활을 시작한 것.
무려 7년 동안 매달 혼자 불 꺼진 집으로 들어가는 일상이 반복됐다.
밤낮이 뒤바뀐 시차 탓에 새벽까지 깨어 아이들과 영상통화를 기다리다 잠드는 날도 많았다.
건강도 점점 악화됐다. 외로움에 지칠 무렵에는 환율 급등으로 생활비 부담까지 커졌다.
몸이 아파도 스스로 병원 예약하고 수납을 해야 했던 그 시절, 가족의 부재는 더 크게 다가왔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대장암 진단을 받았을 때였다.
한 방송 프로그램 생방송 도중 우연히 혈액 검사를 받았고, 검사 결과 암세포가 발견됐다.
다음날 바로 수술대에 올랐지만,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외로운 수술이었다.
더 큰 상처는 아내의 반응이었다.
수술 당일조차 골프를 치러 나간 아내. 이상운은 "그걸 보고 모든 게 끝났다고 느꼈다"고 담담히 말했다.
이후 대장암 수술뿐 아니라 당뇨, 고혈압, 목디스크까지 건강이 망가졌지만, 가족의 모습은 여전히 그의 곁에 없었다.
그동안 매달 보내준 생활비에도 아내는 남편을 돌보지 않았다.
이상운 본인은 매일 한 끼조차 걱정할 만큼 생활고에 시달렸다.
통장 잔고가 4,368원까지 떨어진 적도 있었다. 그렇게 버티다 결국 2012년 이혼을 결심했다.
이혼을 결정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깨진 게 가장 큰 원인 아니었을까."
결혼 21년, 기러기 아빠 7년.
모든 것이 무너진 뒤 그는 오랫동안 자신을 탓하며 괴로워했다. 한때 극단적인 선택까지 고민했을 정도였다.
이혼 후 그는 텐트를 세컨드 하우스 삼아 생활 중이다.
단출하지만 아늑하게 꾸민 텐트 안에서 혼자의 삶을 버텨내고 있다. 다행히 이제는 자녀들과의 관계도 많이 회복됐다.
주말이면 아들과 함께 축구를 하고, 함께 밥을 먹으며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살아보니 인생이 참 어렵더라. 하지만 덕분에 감사할 것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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