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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태 복구 나섰던 20대 굴착기 기사의 죽음‥"멈추란 얘기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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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1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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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살 굴착기 기사‥복구 투입 첫날, 3시간 만에 사고

26살 박지완 씨는 지난 13일 오전, 경기도 용인에서 소형 굴착기로 산사태가 난 곳을 복구하다 숨졌습니다.

사고 현장은 한국도로공사가 발주한 곳입니다. 박 씨는 중소 중장비업체 직원이지만, 복구를 맡은 도급업체의 제안을 받고 일용직으로 현장에 나갔습니다. 박 씨의 업무는 지난 8월, 집중호우로 산에서 쓸려 내려온 돌덩이를 1톤 소형 굴착기로 들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작업은 근로계약서를 미처 쓰기 전에 시작됐습니다. 안전교육은 '안전하게 작업해야 한다'는 말을 듣는 수준으로 속전속결로 이뤄졌습니다. 사고는 현장 투입 첫 날, 작업을 시작한 지 약 3시간 반 만에 일어났습니다.

사고가 난 곳은 마성영업소가 있는 경기도 용인의 선장산 자락 입구입니다. 영업소 건물을 나와 오른쪽으로 스무 걸음을 걸으면, 산으로 올라가는 좁고 가파른 배수로가 나옵니다. 배수로를 가운데 두고, 왼쪽은 산비탈, 오른쪽은 영업소 건물입니다. 박 씨가 치워야 할 바윗덩이는 이 비좁고 가파른 산 오르막길 영업소 건물 쪽에 쌓여있었습니다.

"계단 망가진다"‥계단 대신 사다리 썼다가 참변

당초 도급업체와 박 씨는 마성영업소 현관 계단으로 굴착기를 몰고 진입하려 했습니다. 만약 건물 현관 계단으로 진입하면, 산비탈 배수로를 오르지 않고도 바윗덩이가 쌓인 오르막 앞까지는 굴착기를 최대한 이동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전 7시 59분, 박지완 씨는 역시 굴착기 기사인 아버지에게 사진 한 장을 전송합니다. 마성영업소 건물로 통하는 현관 계단입니다. 박 씨는 사진을 보낸 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굴착기로 올라가면 이 계단이 망가지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사진을 보고 '계단이 망가질 텐데, 만약 계단 망가진다고 일 못하게 하면 철수하라'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약 1시간 반 뒤, 사진이 또 날아듭니다. 박 씨가 굴착기를 당초 말했던 건물 계단이 아닌 산비탈에 대놓은 모습입니다. 박 씨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건물 계단 쪽으로 못 들어가게 한다"며 "산비탈로 올라갈 수 있을지" 다시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산비탈로 올라가면 위험하니 계단으로 올라가지 못하게 하면 철수하라고도 했고, 경험자로서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는지도 이야기했습니다.

결국 박 씨는 건물 현관 계단을 통하지 않고 오르막을 올라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산비탈 쪽 흙을 평평하게 다져 굴착기를 세워둘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박 씨는 이제 굴착기를 몰고 왼쪽 산비탈에서 건너편 영업소 데크로 굴착기를 몰고 건너가야 했습니다. 그는 사다리 2대를 건너편 데크에 닿도록 수평으로 걸쳐놓았습니다. 이 사다리는 보통 굴착기를 트럭에 싣고 내릴 때 쓰는 장비인데, 이 사다리를 다리 삼아 건물 데크로 건너가려 한 겁니다.

오전 11시 19분, 사고 나기 약 15분 전. 박 씨가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사진입니다. 박 씨는 굴착기를 몰고 이 사다리를 건너다가, 굴착기가 옆으로 쓰러져 숨졌습니다. 사고가 난 뒤에야 작업 중지가 이뤄졌습니다.

"사다리 타고 올라가는 건 알고 있었다‥멈추란 얘기 못해"

지난 16일, 경기도 성남에서 열린 박 씨 발인식에는 도급업체의 작업반장도 찾아왔습니다. 그는 멀리서 손을 모으고 서성이며 발인을 지켜봤습니다. 작업반장은 박 씨와 알고 지낸 사이로 그를 "정말 많이 아꼈다"고 말했습니다. '현장에 와서 일해보라'고 제안한 사람도 작업반장이었습니다. 그는 사다리로 작업이 이뤄진 이유를 털어놓았습니다. 박 씨 아버지가 통화했던 내용과 동일하게, 영업소가 건물 계단으로 진입하는 걸 반대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도급업체 작업반장
"우리가 지금 그 (영업소 건물) 사무실 올라가잖아요. 올라가는 계단. 처음에 지완이가 올라간단 얘기를 했었어요. 처음에 영업소에서 '안 된다. (영업소) 팀장하고 얘기해서 올라가라'고. (제가 지완이에게) 나중에 '이 쪽(산비탈)로 올라갈 수 있겠냐' 하니까 (지완이가) '올라가볼게요'‥"

작업반장은 자신이 현장을 2번 비운 이유도 말했습니다.

도급업체 작업반장
"사다리 타고 올라가는 건 알고 있었어요. 처음 일 시작한 거라 물건 살 것도 있고 자재 사야되고 그래서 제가 현장을 잠깐 비웠어요. 그 상황에 제가 평탄 작업을 하라고 해놓고 나갔다 온 사이에 올라가는 바람에‥제가 그 작업을 멈추란 이야기를 못했어요."

도급업체 측은 안전교육이 이뤄졌다고 했지만, 안전교육 서류가 미비한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도급업체 작업반장
"아침을 안 먹고 나오고 그러길래 제가 김밥을 사서 '지완아, 이거 김밥 먹고 벤치에 앉아서. 여기 안전하게 해야 되니까, 세 명이서. 밥 먹고 안전하게 일을 해라‥그렇게 할 일이 아니다' 그렇게 얘기했어요."

박 씨 소속 중장비업체 관계자
"현장에 처음 사고 나서 제가 도착해서 안전교육 진행했냐고 물어봤더니 했대요. 그럼 '지완이 서명 들어간 서류 보여줘라' 했더니 내일 준대요. 근데 지완이는 이미 사망했고. 서류가 내일 나온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근로계약서 뿐 아니라 장비 임대차 계약서도 없었습니다.

박 씨 소속 중장비업체 관계자
"원래는 장비가 들어가기 전에 장비 면허증, 기초안전보건교육증 이런 기초서류 6가지가 돼요. 그런 서류를 하나도 제 쪽에서 받지를 않았어요. 어제(사고 다음날) 부랴부랴 저한테 좀 달라고 하더라고요. 재검표하고 기사 면허증을."

도급업체 측은 "어떤 장비가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일용직은 일이 끝나고 나서 근로계약서를 쓰기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현장이 그렇게 돌아가는 건 아닙니다. 건설업계에서 30년 넘게 일한 한 현장소장은 "근로계약서는 일 시작하기 전에 쓰고 시작하는 게 기본"이라며, "요즘은 교육이 강화돼 현장에서 이런 장비는 또 따로 교육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비가 많이 와서 지반이 불안정한 경우 더 조심해야 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취직했으니 엄마 생일 때 TV 사 주고 싶어요

박지완 씨는 지난 2015년 3월, 특성화고교를 졸업 후 해병대 부사관으로 입대해 4년 6개월 동안 복무했습니다. 전역 후 약 1년간 식당 아르바이트와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일하며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박 씨가 중장비 일을 배우기 시작한 건 지난 2020년 늦여름부터였습니다. 10년차 중장비 기사인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현장에서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러다 약 한 달 전 중장비 업체에 취직한 박 씨는 '취업했으니 엄마 12월 생신 때 TV를 사 주겠다'며 가격을 알아보러 여러 가게를 분주히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박 씨의 10년지기 친구는 취업 소식을 전하던 박 씨의 들뜬 얼굴을 기억합니다. '이제 내 일 하려한다'며 으쓱해하던 목소리에서 "자기 앞길을 헤쳐나간다는 자부심"을 읽었다고 말했습니다. 그에게 박 씨는 "머리가 좋아 학교 다닐 때도 한번에 자격증을 땄던", "장난을 잘 쳐 툭하면 친구들을 웃겼던," "정 많고 눈물도 많아 친구를 위로하다 자기가 울었던" 친구였습니다.

박 씨 고교 동창들은 밤새 빈소를 지켰습니다. 고교에서 함께 부사관을 준비한 친구들입니다.
박 씨는 전역했지만, 친구들은 대부분 현직 군인이라 급히 휴가를 내고 군복 차림으로 달려왔습니다. 이들은 '10월에 다같이 바다 가자'던 친구의 죽음이 잘 실감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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