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의 날씨에 칼바람이 불던 21일 이른 저녁,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초입은 시장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할 정도로 썰렁했다. 설 연휴를 사흘 앞둔 대목이지만, 시장 외곽에 자리한 가게들은 불이 꺼진 곳도 많았다. 빈대떡·마약김밥·육회 등을 판매하는 음식점이 몰려있는 주도로에 가까워질수록 시장 분위기는 활기를 띠었지만, 상인들의 표정에서는 그래도 어둠이 묻어나왔다.
이날 광장시장에서 만난 상인 대부분은 경기가 위축되면서 올해를 비롯해 최근 몇 년간 시장을 찾는 손님이 크게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일부 음식점이 소위 ‘맛집’으로 인기를 끌면서 시장을 찾는 손님은 많아졌지만, 대부분이 관광객이거나 음식만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라 음식점을 제외한 다른 가게들의 매출에는 큰 영향이 없다는 설명이다.
광장시장 내에서 노점을 운영하는 상인 정복순(여·74) 씨는 “오후 4시부터 나와 일하고 있는데 7시가 되도록 하나도 못 팔았다”며 “경기가 좋지 않아서 시장을 찾는 사람도 전보다 줄었고, 시장에 온 사람들도 뭘 사지를 않는다”고 말했다. 과일 도매상을 운영하는 박미향(여·60) 씨도 “단골들이나 좀 찾지, 일반 고객들은 찾아보기 힘들다”며 “과일세트 같은 선물세트는 인터넷으로 사는 거 같다”고 했다.
시장을 찾은 시민들은 생각보다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혀를 내두른다. 실제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소매 정보를 보면 채소와 육류·수산물 등의 가격은 1년 전보다 크게 올랐다. 가령 21일 기준 배추의 평균 가격은 포기당 4629원으로 1년 전(2594원)보다 약 2000원 비싸졌다. 무(2870원)도 지난해 가격(1433원)의 2배로 뛰었다.
동태, 갈치, 고등어, 한우 갈비, 한우 등심 등 수산물과 육류 가격 역시 1년 전보다 적게는 몇백 원에서 많게는 몇천 원씩 올랐다. 설 음식 재료를 장만하기 위해 시장을 찾았다는 김문영(여·56) 씨는 “대형마트보다는 가격이 좀 저렴할 것으로 기대하고 왔는데, 대형마트나 시장이나 큰 차이가 없다”며 “갈치(제주산) 한 마리에 5만 원, 조그마한 무 하나에 3000원씩 하니까 쉽게 살 엄두가 안 난다”고 했다.
대형마트도 전통 시장과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같은 날 찾은 서울 서초구의 한 대형마트는 매장 내부가 대체로 한산했다. 매장 곳곳에 설 선물세트가 전시돼있었지만, 고객들 대부분은 물·휴지 등 생필품과 간단한 식재료를 구매할 뿐이었다. 김동훈(39) 씨는 “간단하게 장을 봤다고 생각했는데도 10만 원이 훌쩍 넘어 깜짝 놀랐다”며 “저물가라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리는데, 체감되는 물가는 생각보다 높은 것 같다”고 했다. 전정숙(여·67) 씨도 “경기가 워낙 안 좋으니까 마트에 와도 살만한 게 없다”며 “대폭 할인을 하는 품목이 아니면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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