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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 필수품이었는데 지금은 사라진 물건 
🏀🏀농구🏀🏀
2023.03.20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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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손에 쥐고 있을 '스마트폰', 스마트폰과 거의 짝꿍처럼 붙어 다닐 수밖에 없는 '무선 이어폰'. 이제는 우리 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세기의 발명품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처럼 단순히 생활을 편리하게 해준 정도가 아니라 우리 삶을 완전히 변화 시킨 물건들이 있다.

말 없는 마차는 어떻게 사람들을 태웠을까?

당신이 주말에 친구를 만나러 혹은 가족들과 여행을 간다고 생각해 보자. 그때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할 것인가? 자동차가 될 수도 있고, 버스, 지하철, 택시, 비행기 등 여러 교통수단을 바로 떠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교통수단이 없었던 시대가 있었다. 산업혁명으로 대도시가 형성되었고 사람들이 일자리를 얻기 위해 도시로 모여든 시기. 하지만 도시가 확장될수록 일하는 직장과 집의 거리가 멀어져 교통수단이 필요해진 것이다. 그때 등장한 것이 ‘전차’다. 전차는 당시 사람들에게 ‘약속’을 가능케 했다. 누군가를 만날 때 전차의 출발 시간만 알면 약속 장소에 늦지 않고 도착할 수 있었고, ‘출퇴근한다’는 개념을 생겨나게 했다. 전차의 등장으로 비로소 그럴듯한 근대의 모습이 시작된 것이다.

여자들의 로망이자 할부제를 도입한 최초의 물건 '재봉틀'

‘남자는 밖에서 돈을 벌어오고 여자는 집에서 살림을 해야 한다.’ 이 문장을 지금 반박하지 않고 수긍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아마도 없을 것이며, 있어도 이 말을 했다가는 수많은 질책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저 문장이 정말 당연하게 받아들여진 시기가 있었다. 바로 조선시대이다. 당시 여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여겨진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바느질’이다. 조선시대 여성들이 쓴 책, 수필 등에도 바느질이 자주 언급되며, 성종의 어머니인 소혜왕후가 쓴 여성 교육서 《내훈》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여자는 열 살이 되면 실과 골풀을 다스리며 베와 비단을 짜고 곱고 가는 끈이나 굵은 끈을 꼬며 여자의 일을 배워서 의복을 만들어 바쳐야 한다.’ 이러한 글만 봐도 당시 여성들은 바느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이자 굴레였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중요한 바느질을 수백 배는 빠르고 촘촘하게 해주는 ‘재봉틀’의 등장은 가히 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할부제를 도입하여 판매한 최초의 물건이기도 하다. ‘재봉틀’의 등장으로 당시 여학생들은 재봉 수업을 받았으며, 이는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가능케 했다.

사람들에게 여가시간을 선사한 '영사기'

문화생활을 생각했을 때, 빼놓지 않고 나오는 게 바로 ‘영화’다. 눈에 보이는 장면을 그대로 찍어내는 사진기도 혁명이었는데, 그 사진이 영상으로 움직이게 하는 ‘영사기’의 등장은 가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영상이나 영화라는 이름이 붙여지기 전 ‘활동사진’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는 사실만 봐도 당시의 분위기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당시 영상에는 소리가 담겨 있지 않아 ‘무성 영화’라고 불렀다. 그리고 ‘무성 영화’는 새로운 직업을 탄생시켰다. 바로 영화의 해설을 해주는 ‘변사’이다. ‘영사기’의 등장으로 ‘변사’들의 전성시대가 열렸으며, 극장이 생겨나 사람들에게 여가시간이라는 개념을 제공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물건들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물건들이 우리의 삶을 무조건 편리하게만 만들었을까? 근대의 모습을 갖추게 한 ‘전차’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식민통치를 한 일본인들이었다. 일본인들을 위한 노선을 우선적으로 개통하고 교통의 편리함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경복궁의 담장을 허물기도 했다.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가능케 한 ‘재봉틀’은 태평양 전쟁 이후 일본인들의 군복을 밤낮없이 제작하는 물건이 되었다.

이렇듯 근대 사물의 도입은 명암이 함께 존재한다. 따라서 사물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꿨고, 어떤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살펴본다면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누리고 있는 과학 기술의 미래가 어떤 형태로 전개될지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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