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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처음 본 할아버지를 미행했습니다
📱갤럭시📱
2020.07.04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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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밤 치매가 의심되는 할아버지의 귀갓길을 따라간 대학생의 ‘착한 미행’이 따뜻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지난달 25일 성균관대학교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는 ‘방금 처음 본 할아버지를 미행하다가 왔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글과 인터뷰 내용을 종합하면 A씨는 지난달 24일 비가 쏟아지는 오후 11시 공부를 끝내고 자취하는 오피스텔에 귀가했습니다. 그런데 낯선 남성이 오피스텔 현관 1층 엘리베이터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A씨가 가까이 다가가 보니 낯선 남성은 할아버지였습니다. 할아버지는 집에 들어가려는 A씨를 뚫어져라 쳐다봤습니다. 무서울 법도 한데, A씨는 지나치지 않고 할아버지에게 “여긴 어쩐 일이세요”라고 여쭤봤습니다.

“오늘 은행 안 열어?” 할아버지의 입에서 의외의 대답이 튀어나왔습니다. 할아버지는 A씨가 거주하는 오피스텔 2층과 3층에 있는 은행을 찾아온 겁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께서 오피스텔 앞을 서성대던 시각은 밤 11시였습니다.

A씨는 할아버지에게 “지금 시간이 너무 늦어서 (문을) 닫았어요”라고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청력이 안 좋은지 할아버지는 A씨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자세히 보니 할아버지는 시력도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쪽 눈을 아예 뜨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은행 가려고 아침에 나왔는데….” A씨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찰나 할아버지는 한 마디를 더 꺼냈습니다. A씨는 이 한 마디에 “혹시 치매에 걸리신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어지는 대화는 A씨를 더욱 걱정하게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A씨에게 “오늘 며칠이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A씨가 “오늘 24일이에요”라고 말하자 할아버지는 “25일 아니야? 아이구, 내가 착각했네”라고 말했습니다.

걱정이 커진 A씨는 할아버지에게 “집은 이 근처세요?”라고 여쭤보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어, 이 근처여”라고 대답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이 대화를 끝으로 오피스텔 밖으로 나갔습니다.

하지만 A씨는 집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몇 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차마 외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거기다 할아버지는 치매가 의심됐습니다. A씨는 파출소에 치매 걸린 길 잃은 할아버지가 있다며 신고 전화를 할까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치매가 아닐 경우 할아버지의 마음을 다치게 할까 봐 경찰서에 전화를 걸 수도 없었습니다.

A씨가 고민 끝에 선택한 건 ‘미행’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무사히 귀가하시는지 확인하기 위해 슬금슬금 뒤를 따라가기 시작한 겁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귀갓길은 무언가 이상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우산을 지팡이로 쓰느라 비를 흠뻑 맞으며 길을 걸었습니다. 비가 억수같이 오는 날인데도 우산을 쓰지 않은 것입니다. 또 이 근처에 산다면 집이 나와야 하는데, 할아버지는 20분 내내 하염없이 발걸음만 재촉했습니다. 2~3번 정도 이상한 방향으로 간 적도 있었습니다.

A씨는 안 되겠다 싶어 할아버지에게 다가갔습니다. “할아버지 저, 기억하세요?” 할아버지는 불과 20분 전에 만난 A씨를 못 알아보는 눈치였습니다. A씨는 “저, 아까 은행에서! 은행에서 본 것 기억 안 나세요?”라고 재차 물어보았습니다. 할아버지는 그제야 웃으면서 “어 맞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A씨는 할아버지에게 다시 한번 집 위치를 여쭤보았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대답은 한결같이 “이 근처”였습니다. A씨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택시를 태워드리겠다고도 했고, 함께 귀가하자고도 했지만, 할아버지는 “아니여, 슬슬 가면 돼. 괜찮아”라며 한사코 거절할 뿐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다시 혼자 집으로 향했습니다. 다행히 우산은 쓰셨습니다. 하지만 걱정이 더 커진 A씨는 끝까지 할아버지를 미행하기로 했습니다. 20분쯤 더 걸었을까. 할아버지가 드디어 허름한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40분간의 미행을 끝낸 A씨는 할아버지의 무사 귀가에 안도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오버랩됐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거주하는 오피스텔과 할아버지의 허름한 아파트가 너무 대비됐던 것입니다. A씨는 다시 30분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싱숭생숭한 마음, 그리고 눈물과 함께 말입니다.

A씨는 국민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할아버지 뒤를 따라갈 때는 ‘맞는 일을 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가장 컸다. 일반적으로 누군가를 미행하는 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라면서도 “하지만 할아버지와 오피스텔 1층에서 은행이나 날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치매는 아니실까 걱정이 됐다. 할아버지께서 오피스텔을 나가셨지만 계속 눈에 밟혔고, 할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것보다는 미행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40~50분 내내 미행을 이어간 이유에 대해서도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할아버지가 안전하게 집을 찾아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먼발치에서 지켜보며 따라갔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할아버지를 따라간 이유를 묻자 A씨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꺼냈습니다. 그는 “부모님께서 맞벌이하시느라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유달리 어르신들에게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과 애착이 있다”며 “등이 굽으시거나 ‘괜찮다’며 한사코 거절하시는 모습 등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생각이 나서 더 걱정이 많이 되었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A씨의 사연을 기사로 옮기면서 한 문장 한 문장마다 울컥했습니다. 할아버지를 외면하지 않고 “어쩐 일이세요”라며 질문을 던진 장면, 할아버지의 마음이 다칠까 봐 경찰서에 신고하지 않은 장면, 떨리는 마음으로 40분 내내 뒤를 쫓아간 그 모든 순간에서 할아버지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과 끈끈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라면 어땠을까요.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는 할아버지가 무서워서 바로 엘리베이터를 탔을 수도 있을 것이고, 걱정은 되지만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겁니다. 글쓴이의 ‘착한 미행’에 어떤 학우는 “제가 다 감사합니다”라는 댓글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실천하기 어려운 행동, 외면하고 지낸 따뜻함을 이 학우는 느꼈을 겁니다. 그래서, 저도 이 학우처럼 사연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저도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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