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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발달 더딜 뿐인데.. 보낼 보육기관이 없어요" [탐사기획 - 이른둥이 성장 추적 리포트]
정하_831563
2019.06.11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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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밖 그 아이, 어떻게 살까 / 문화센터 영유아 프로그램 / 대부분 생후 기준으로 접수 / 또래보다 신체조건 안좋아 /접수 거부 당해도 항의 못해

“아기가 조금만 더 (뱃속에) 있다 나왔으면 좋겠다고 기도했어요. 병원 침대에 누워서도 ‘아직은 안 돼, 조금만 버텨보자’고 매일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다른 애들보다 빨리 태어날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요. 그래도 ‘조금만 더 늦출 수 있다면 좋겠다, 참 좋겠다’고 바랐어요.” 유혜경(가명)씨가 ‘이른둥이’를 낳은 건 예정된 일이었다.

  
7년 전 임신 32주차에 큰 아이를 낳았던 유씨의 임신중독증은 둘째 임신 당시에도 이미 심각한 상태였다. 조산 경험이 있는 유씨한테 또 한 번의 이른 출산은 익숙하면서도 여전히 두려운 일이었다. 해만 넘겨 태어나게 해 달라는 유씨의 ‘구체적’ 소원도 그 때문이었다. 
  
“제발 이번 달만 넘겨 나오라고 주문처럼 말했어요. ‘12월31일만 넘기자, 올해만 넘기자’라며 빌고 빌었죠.” 유씨 소원대로 둘째 딸 서연이(가명)는 이듬해 1월 중순 태어났다. 임신 35주째, 체중 2.53㎏으로 비교적 건강한 아기였다. 
  
“‘다행이다’ 싶었어요. 이른둥이 애들에게 하루, 이틀, 일주일 차이는 엄청나요. 엄마 뱃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랐어야 할 근육들이 세상에 나온 뒤 비로소 발달해야 하니까요. 조금이라도 더 크게 해서 나중에 학교생활이라도 어려움 없이 적응시키고 싶은 맘에 그렇게 빌었던 거예요.” 출생과 동시에 ‘한 살’인 우리나라 나이 계산법상 12월에 태어난 아기는 생후 채 한 달도 안 돼 벌써 ‘두 살’이 된다. 유씨는 태어날 아기에게 조금의 시간이라도 더 벌어주고 싶었다. 

초봄이 예정일이었던 서연이는 그렇게 한파가 몰아치던 한겨울에 태어났다. 세상 구경이 남달리 빨랐던 만큼 적응도 쉽지 않았다. 당장 걸음마부터 그랬다. 
  
지난 4월 경북 구미시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만난 서연이의 걸음걸이는 한눈에도 아슬아슬해 보였다. 생후 15개월째였다. 아이는 자주 엉덩방아를 찧었다. 몸을 일으키고, 무릎을 펴고, 발을 떼는 일이 생각처럼 잘 안 되는 듯했다. 상체는 자주 휘청거렸다. 서연이는 이렇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앉았다 일어났다, 또다시 넘어지는 일을 반복한다고 했다. 
  
“우리 아이는 이제 잡고 일어서기 시작했어요. 다른 애들보다는 좀 느리죠.” 
  
보통 38∼40주 정도의 임신 기간을 모체에서 보낸 만삭아라면 평균 생후 12∼15개월쯤 혼자 걷기를 시작한다. 임신 32주차에 이른둥이로 태어난 데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서연이의 오빠도 생후 15개월쯤 완벽한 걸음마를 보여줬다. 
  
서연이의 경우 출산 후 건강에 별 이상이 없었던 만큼 유씨는 이른 시일 안에 만삭아의 발달을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혼자 걷는 연습이 생각보다 잘 되지 않자 초조해졌다. 
  
“조산아(이른둥이)였던 첫애를 먼저 키워본 경험이 있어서 이맘때쯤 아이들의 발달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른 애들 엄마보다는 잘 아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병원에서는 자꾸 ‘해줄 게 없다’는 말만 하는 거예요. 조산아라서 고위험군은 맞는데, 특별히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닌 아이라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거였죠. 영유아 검진을 받아봐도 ‘조산아니까 다른 애들보다 느린 거다. 병원에서는 도와줄 수 없다’는 얘기만 하니까 차일피일 시간이 흐르기만 기다린 거나 마찬가지죠.”

◆만삭아 기준에 맞춰진 또래 놀이시설 
  
유씨의 걱정은 ‘더딘 걸음마’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금은 단지 걸음이 느릴 뿐이지만나중에 서연이가 신체 발달 면에서도 또래 아이들과 비교해 차이가 현저히 벌어질까봐 두려운 것이다. 두 모녀는 이미 한 차례 호된 ‘신고식’을 치른 바 있다. 동네 대형마트에서 운영하는 문화센터에서였다. 
  
“엄마들이 아기들 데리고 (문화센터에서) 촉감놀이, 블록놀이 이런 걸 하러 가요. 거기에 가면 선생님이 애들 앞에서 딸랑이 같은 걸 들고 흔들어요, 이리 오라고. 그럼 애들이 달려나가서 물건도 가지고 오고, 다른 교구(학습도구)도 갖고 놀고 하는 건데 우리 애는 그러질 못하는 거예요. 우리 애는 걷질 못하니까 제가 안고 달려야 했죠.” 
  
이런 유씨 모습에 다른 부모들은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무심한 질문에 상처를 입은 적도 여러 번이다. 
  
“같이 수업 듣는 엄마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게 느껴져요. 그러다 ‘얘는 왜 아직 걷질 못해요?’라고 물어보면 ‘이른둥이라서 그래요’ 하고 대답은 하는데 속이 끓는 거예요.” 

유씨는 서연이의 발달 상태에 맞춰 좀 더 늦은 개월 수의 아기들과 수업을 받으면 어떻겠느냐고 문의했지만 ‘안 된다’는 답만 들었다. 문화센터 관계자는 “많은 아이가 있고, 한 사람만을 위해 일일이 편의를 봐주기 어렵다”는 이유를 댔다. 사실상 등록 거부나 마찬가지였다. 영유아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대부분의 사설 문화센터 프로그램이 태어난 시기를 기준으로 수업 대상을 구분하고 있는 탓이다. 이 때문에 유씨와 같은 이른둥이 부모들은 아이의 발달 상태에 맞춰 수업을 듣고 싶어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프로그램을 옮길 때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유씨는 아예 아이를 데리고 문화센터에 가는 것을 포기했다. 
  
10일 세계일보 취재팀이 서울 지역 20개 백화점 및 대형마트 문화센터의 영유아 대상 프로그램을 분석한 결과 모두 생후 몇 주 또는 몇 개월이 지났는지만을 기준으로 삼고 있었다. 부모들 사이에 특히 인기가 높아 거의 모든 문화센터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어느 유아 생활체육 프로그램의 경우 수업 권장 연령을 생후 12∼24개월, 24∼36개월, 36∼60개월 등으로 크게 구분하고 작게는 7개월에서 많게는 18개월 단위로 대상 연령을 정하고 있었다. 
  
유씨는 7년 전에도 이른둥이인 첫째가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다는 이유로 다른 부모들의 항의를 받자 문화센터 등록을 단념했다. 하지만 그냥 신체 발달이 좀 느릴 뿐인 서연이마저 거부를 당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유씨는 이때를 떠올리며 “이른둥이를 키우는 건 어쩌면 ‘포기의 연속’일지도 모른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른둥이를 키우는 주변 부모들을 봐도 처음엔 동네 문화센터에서 밀려나는 정도이지만 나중에는 어린이집, 유치원 등 보육·교육기관은 물론 심한 경우 초등학교 입학마저 미루게 된다고 한다. 

◆“어린이집 보내도 안심 못해” 
  
그래도 서연이는 운이 좋은 편이다. 세 번째 시도 끝에 집 근처 어린이집을 다닐 수 있어서다. 어린이집 등 보육기관 역시 대부분 생후 주수를 기준으로 원아를 모집한다. 장애가 없는 상태에서 만삭아보다 신체조건이 좋지 않거나 발달이 늦는 등의 이유는 고려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른둥이들이 같은 나이대 아이들과 어울려 놀다 안전사고에 노출되거나 단체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래에 비해 면역체계도 약하다 보니 전염성 질환에 노출되는 일도 잦다. 
  
하지만 어린이집에서 사고가 발생해도 제대로 따져 묻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통 아이들보다 건강상 취약한 이른둥이 아이들을 받아줄 기관이 드물기 때문이다.이런저런 이유들로 자녀 상태가 또래보다 처져도 ‘신경 좀 써주세요’라는 말조차 대놓고 하지 못한다. 
  
“이른둥이를 가진 엄마들끼리 얘기하다 보면 걱정하는 게 다 비슷해요. ‘이런 식으로 당장은 괜찮아도, 혹시 기관에서 크게 다치거나 애들 틈에 끼지 못하고 수동적 행동만 반복하다가 성격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치면 어떻게 하느냐’ 이런 고민들을 나눠요. 그렇게 안 되려면 아이가 클 때까지 품에 끼고 있어야 되는 거예요. 답이 없는 거죠. 아무래도 이 세상은 이른둥이만 빼고 돌아가는 것 같네요.” 

생후 15개월 된 이른둥이 서연이(가명) 엄마가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채 어린이집을 나서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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