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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했어요, 너그러워지세요…
노양심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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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지나온 삶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한 일흔 살 환자도 그랬다.

“제 인생을 돌아보면 후회뿐이에요.”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가족을 위했고 자녀들도 나름대로 훌륭하게 키웠다. 인생의 굴곡이야 있었지만 큰 어려움 없이 성실하게 살아온 인생이었다. 그런데 은퇴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지나간 일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아이들이 어릴 때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줄 걸 그랬어요. 돈 번다고 회사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그래봤자 내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는데...”
젊었을 때 하고 싶었던 공부를 포기한 것도 아쉽고 부모님을 더 잘 돌보지 못하고 돌아가시게 한 것도 마음 아프다고 했다. 아내에게 따뜻한 말을 많이 하지 못했던 것도 미안하다고 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르게 살고 싶어요.”

잠시 이야기를 듣다가 물었다.

“들어보니 그때는 정말 열심히 사신 것 같은데 만약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다르게 살 수 있었을까요?”
그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만 보았다.
우리는 과거를 돌아볼 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는다. 현재의 내가 가진 여유, 경험, 그리고 지혜를 가지고 과거의 나를 바라본다는 점이다. 지금은 가족과 보내는 시간과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돈과 성공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한창 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다르다. 그때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아이들을 키워야 했고 부모님도 챙겨야 했다. 하루하루를 버텨내느라 멀리 내다볼 여유가 없었다. 하루가 벅찼고 내일이 버거웠다. 아마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우리는 비슷하게 살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 당시에는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한 번에 하나의 인생밖에 살 수 없다. 선택하며 살아가는 인간에게 후회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아쉬움, 안타까움, 그리고 후회는 결코 잘못 살았다는 증거가 아니다.
“왜 그때의 나는 그렇게밖에 못 했을까?”
이 질문을 조금만 바꿔보자.
“그때의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생각해보면 과거의 내가 조금 다르게 보인다. 철없었던 나, 혹은 두려워했던 내가 보이기도 한다. 가족을 책임지려고 애쓰던 나도 있고 실패하지 않으려고 버티던 나도 있다. 때로는 잘못 판단했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을 것이다. 물론 그런 잘못까지 모두 “최선이었다”는 말로 덮자는 뜻은 아니다. 고칠 수 있는 것은 지금이라도 고쳐야 한다.

과거의 자신에게 지나치게 가혹할 필요는 없다. 지금의 우리는 결과를 알고 과거를 평가하지만 그때의 나는 결과를 몰랐다. 불확실한 삶 속에서 나름대로 판단하고 선택하며 살아온 것이다.
다시 그 환자에게 말했다.
“그 당시에는 최선을 다하셨던 것 같습니다. 가족을 책임지느라 정말 열심히 사셨잖아요.”
환자에게는 후회뿐인 인생이었지만 내게는 가족을 위해 평생 애쓰며 살아온 한 사람의 인생으로 보였다. 그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다 조용히 말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아무도 그런 말을 제게 해주지 않았어요.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좀 놓이네요.”과거로 돌아가 인생을 다시 바꿀 수는 없지만 지나온 삶을 바라보는 시선은 바꿀 수 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아쉬운 장면이 있다. 하지 말았어야 할 말도 있고 잡았어야 했던 손도 있다. 조금 더 용기를 냈다면 좋았을 일도 있고 조금 일찍 포기했으면 좋았을 일도 있다. 그러나 인생 전체를 몇 개의 후회되는 장면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진료실에서 환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싶은 아쉬운 순간도 있다. 그러나 누구나 남들이 알지 못하는 사정이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일지라도 그 사람 나름의 이유가 있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되 자신을 끝없이 비난하지 않도록 돕는 것, 의사로서의 역할 중 일부다.

후회 없는 인생은 없다. 잘 산 인생이란 후회 없는 인생이 아니라 후회까지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인생이다.

오늘도 진료실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말을 건넨다.
“그동안 참 애쓰셨습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던 날들을 견디며 여기까지 오셨습니다. 그때의 당신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제는 과거의 자신에게도 조금 너그러워졌으면 좋겠다. 남에게는 쉽게 건네던 위로의 말을 자신에게도 해주었으면 한다. 그래서 앞으로의 삶이 좀 더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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