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스테롤을 낮춰 심근경색·뇌졸중을 예방하는 약이 오히려 치매를 부른다는 소문은 지금도 환자들 사이에서 꾸준히 회자된다. 하지만 최근 다수의 대규모 연구와 메타분석 결과에 따르면, 스타틴 계열 약물이 치매 위험을 높인다는 근거는 부족하다. 오히려 일부 연구에서는 치매 예방 효과 가능성까지 제시되고 있고, 의료진들은 소문을 사실로 오해하고 약을 끊는 행위가 더 위험하다고 말한다.
◇"2000년대 초반부터 확산… 일부 사례 보고 위주"
스타틴 계열 치료제는 체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는 고지혈증 치료제다. '리피토'·'로수젯' 등 특정 제품명으로도 유명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종류의 약제가 있고 성분명이 모두 '~스타틴'으로 끝나기 때문에 스타틴 계열 치료제라고 부른다. 주로 향후에 생길 심혈관 합병증을 예방하려는 '1차 예방' 목적으로 많이 처방된다.
스타틴 계열 치료제를 장기간 복용할 경우 치매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다. 일부 언론·SNS·건강 정보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됐다. 특히 소문은 2012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약물 포장지에 단기 인지장애 사례가 보고됐다는 안내 문구를 추가하면서 더 퍼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일부 사례 보고를 중심으로 '인지기능 저하에 대해 명확한 인과관계는 입증되지 않았으나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다.
약물을 복용한 환자가 기억력 저하를 경험했다는 개별 사례들이 매체를 통해 반복적으로 공유됐고, 이를 근거로 '스타틴 약물을 장기 복용하면 치매 위험이 높아진다'는 인식이 대중적으로 퍼졌다. 한국의학연구소(KMI) 안지현 상임연구위원은 "이러한 소문은 극히 일부 사례의 경험담이나 임상적으로 확립되지 않은 초기 보고에 근거한 오해, 그리고 공신력 낮은 정보가 반복 확대된 것"이라며 "대중적으로 뉴스를 타거나 SNS에서 파급력이 커진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근거 부족… 오히려 위험 낮춘다는 연구 결과 있어"
결론부터 말하면, 스타틴 계열 약물이 치매 위험을 높인다는 소문은 근거가 충분하지 않아 사실로 보기 어렵다. 최신 국제학술지에 게재된 메타분석(수년간 축적된 연구 논문들을 요약하고 분석하는 연구 방법), 다수의 대규모 연구, 아시아계 환자군을 포함한 연구들은 오히려 스타틴과 치매 위험 증가 간 명확한 인과관계를 찾지 못했다. 공신력이 높다고 평가받는 미국심장학회(AHA)·미국예방서비스실무단(USPSTF) 등 기관에서조차 스타틴의 치매 위험에 대한 대중적 불안은 과학적으로 근거가 부족하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안지현 상임연구위원은 "장기간 스타틴 복용과 치매 위험 증가를 연결하는 소문은 초기 사례 보고와 미디어 확산으로 생긴 '근거 부족한 사회적 불안'에 가깝다"며 "국제학술지와 전문학회, 임상 가이드라인은 지금까지 치매 발생 위험과 스타틴의 인과관계를 증명하지 못했고, 오히려 뇌 건강과 치매 위험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방향으로 연구와 권고를 발표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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