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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박창범 검사에요"..28세 청년 1.5억 앗아간 피싱
bingogo
2020.12.04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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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수사관-금융기관 직원 역할 나눠 시선 분산
예적금 4000만원에 대출 1.1억원까지 가로채

"여보세요?"

"AOO씨죠? 여기 서울중앙지검 금융·기업범죄전담부인데 본인 맞으신가요?"

직장인 A(28)씨는 지난달 20일 모르는 휴대폰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남성은 자신을 '최민수 수사관'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은행, 통신사 대리점, 대부업체 직원이 끼어있는 장만수 일당이 당신 명의를 도용해 통장을 개설하고 대출을 받는 등 사기를 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창범 검사'라는 남성을 연결해줬다.

피싱 1단계: 검사 사칭해 공포감 조성

이어 등장한 박 검사라는 남성은 A씨의 개인정보와 가족관계까지 읊으며 긴장감을 조성했다. 그는 A씨에게 휴대폰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앱)으로 구속영장과 법무부 공문서를 보내며 "피해를 막기 위해 조사를 해야 한다"고 채근했다. 자신들이 잡았다면서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조직 검거 기사를 갈무리한 사진도 보냈다.

그 다음으로 나타난 '부장'이라는 남성은 A씨 부모 이름을 대며 "금융실명제인데 부모가 청약과 보험금을 대주고 있지 않냐"며 "가족 모두 구속 수사를 받을 수 있다"고 겁을 줬다. 그는 "불법 대출 조사를 하고 대출 기록 삭제를 위해 필요하니 은행에서 예금을 인출해 주면 확인 후에 돌려주겠다"고 했다. 인터넷을 사용하는지 감시하고 통화도 녹취하고 있다면서 다른 사람과 연락도 못하게 했다.

피싱 2단계: 은행으로 불러 현금인출 요구

급하게 서울 종로구 한 시중은행 지점에서 예금 2,000만원을 인출한 A씨는 검은색 마스크를 쓴 '황명환 대리'라는 남성을 만나 돈을 건넸다. 이 남성은 A씨에게 서류를 건네며 "계속 감시를 하고 있으니 10분마다 위치 정보를 기록하고 택시로만 이동하라"고 지시했다.

사흘 후 A씨는 다시 전화를 받았다. 이번에는 수사팀장 '김석순 검사'라는 남성이었다. 그는 "신변 보호를 위해 금융위원회에 대출 제한을 요청했는데, 제대로 됐는지 확인이 필요하다"며 "대출 한도 조회를 한 뒤 결과를 보내달라"고 했다. 이어 한 지방은행 계좌를 개설하게 한 뒤 4,100만원을 대출 받게 했다. A씨는 남성의 지시대로 이 돈을 시중은행 두 곳 계좌로 옮기고 지점 두 곳에서 따로 인출해 1호선 신설동역 10번 출구에서 만난 황 대리라는 남성에게 건넸다. 비슷한 방식으로 A씨가 지난달 25일까지 6일간 황 대리와 '박재호 대리'라는 남성에게 전달한 돈은 약 1억5,000만원에 이른다.

피싱 3단계: 현금인출 성공하면 추가대출 요구

부장검사-검사-수사관-금융기관 직원 등으로 자신을 소개한 최소 6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이 '현금보호 작전'은 완벽한 사기였다. A씨는 예금과 적금 약 4,000만원, 대출금 1억1,000만원을 가로채기 당한 것이다.

A씨는 3일 본보와 통화에서 "너무 무섭고 가족 걱정이 되어 지시를 따를 수 밖에 없었다"며 "그들은 은행 지점에서 돈을 인출하기 전 먼저 은행의 현금 보유량을 체크(확인)하고 은행 측에 '금을 구입할 목적이다'라고 말하게 시켰다"고 했다. 그는 "호텔에 머물게 하고 계속 통화를 하면서 다른 사람과 대화를 못하게 했다"며 "휴대폰을 초기화하도록 한 뒤에야 집으로 올 수 있었는데, 그때서야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를 당한 것을 알았다"고 토로했다.

A씨는 가족의 도움을 받아 경찰에 신고를 했고, 현재 서울 동대문경찰서에서 수사가 진행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가 주소지 경찰서에 신고를 했는데, 사건 발생지가 동대문서 관할이라서 최근 사건이 우리 쪽으로 이송됐다"며 "현재 관련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피해자인 A씨가 검사를 사칭한 남성으로부터 받은 휴대폰 문자 메시지. A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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