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내 임종실 설치 유예기간이 지난 7월 31일부로 종료된 가운데, 실제 운영과 활용은 여전히 ‘빈칸’으로 남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서 임종실 이용 가능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8월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과 요양병원의 임종실 설치를 의무화했다. 환자가 삶의 마지막 순간을 가족과 함께 품위 있고 아름답게 마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신규 개설되는 병원은 지난해 8월부터, 기존에 운영 중이던 의료기관의 경우 1년 유예기간을 부여해 2025년 7월 31일까지 임종실을 설치토록 했다.
지난 5월까지만 해도 상급종합병원의 임종실 설치율은 절반 정도였다. 복건복지부가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5월 기준 전국 상급종합병원 47곳 중 임종실을 설치한 곳은 27곳에 불과했다.
현재는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 대부분이 임종실을 설치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A씨는 “기존 6인실을 1인실인 임종실로 변경하는 공사를 지난달 마쳤다”라며 “의료법상 벌금 내지는 개설허가 취소까지 받을 수 있는 부분이라 의무가 있는 병원들은 모두 설치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설치는 했지만… 낮은 이용률 숙제
다인실이 대부분인 우리나라 의료 환경에서는 환자가 삶의 마지막 순간을 가족과 함께 품위 있게 마감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임종실 설치 의무화로 존엄한 죽음을 준비하는 공간이 생겼지만 낮은 이용률은 숙제로 남는다. 실제 복지부가 서울 지역 상급종합병원 중 임종실을 설치한 7개 병원을 대상으로 이용 실적을 조사한 자료를 보면 지난 5월의 경우, 서울대병원은 이용자가 한 명도 없었다. 이대목동병원과 고려대구로병원, 중앙대병원이 각 1명, 고대안암병원이 2명, 세브란스 병원이 3명이었다. 환자 1명이 임종실에서 보통 2~3일 머문다는 걸 감안하면 거의 비어 있었다는 얘기다.
A씨는 “임종실이 생긴 건 맞지만,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는 담당하는 간호본부도 모르는 상태”라며 “설치한 지 한 달이 됐지만 이용한 환자가 한명도 없어 현재로선 그냥 병상 하나만 놓인 공간으로 봐도 무방하다”라고 말했다.
◇임종기 판단 늦고 병원 수익성 우려
임종실 이용률이 낮은 데에는 여러 원인이 거론된다. 먼저 임종기 판단이 늦어서다. 임종실을 이용하려면 2명 이상의 의료진으로부터 임종기에 있다는 판정을 받아야 한다. 의학적으로 임종기는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를 받더라도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돼 사망이 임박한 상태를 뜻한다.
그런데 실제 의료현장에서 임종 과정을 가려내는 일이 쉽지 않다는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왔다. 곧 사망할 것 같은 환자도 집중 치료를 받으면 다시 호전되기도 한다.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김대균 권역호스피스센터장(가정의학과)은 “연명치료를 중단하기 어려운 이유와 똑같다”라며 “임종기 판단이 어렵기 때문에 의료진 입장에서 환자와 보호자에게 임종실을 권유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수익성에 대한 병원의 우려도 있다. 별도 공간을 정해 임종실을 만들고 간호 인력을 배치하는 등 투입 비용은 적잖지만 다른 병상보다 수익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임종실 수가는 ▲상급종합병원 40만4560원 ▲종합병원 28만5490원 ▲병원은 23만400원이며, 환자 본인부담률은 20%를 적용한다. 병원 입장에서 집중치료실 등을 운영하면 입원료와 별도의 수익이 발생하지만 임종실은 책정된 수가가 전부다.
◇“임종실 운영 매뉴얼부터 만들어야”
무엇보다 임종실 운영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종실 설치가 의무화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주무부처가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김대균 센터장은 “보건복지부에서 임종실 설치를 독려하는 공문을 보내거나 임종실 운영 매뉴얼을 만들기 위해서 전문가 자문 회의를 한 적이 없다”라며 “의료진들도 의과대학에서도 ‘임종기 돌봄’을 배우지 못한 상황이라 임종실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라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임종실이 제 역할을 하려면 단순한 공간 설치를 넘어 ‘운영 시스템’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임종실 운영 매뉴얼을 개발하고 의료진들이 일정 주기로 임종기 돌봄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당 내용을 ‘필수 평점 교육’ 항목에 포함시키는 등의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임종실 운영이 지속가능하도록 입원료 가산 항목을 신설해 병원들이 인력과 교육에 투자할 수 있는 재정적 여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심리적·사회적·영적 돌봄까지 포함해야 진정한 임종 돌봄”이라며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임종실은 그냥 빈 공간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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