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혜나 맥주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보리 찌꺼기는 흔히 ‘부산물’이라 불리며, 버려지기 일쑤다. 하지만 섬유질, 단백질, 무기질 등 영양소가 풍부해 식품 원료로 활용 가능성이 크다. 최근까지 우리나라에서 이 버려지는 것들에 눈길을 준 사람이 없었다. 리하베스트 민명준 대표가 새활용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민 대표는 먼저 식혜 부산물인 '식혜박'으로 에너지바를 만들었고 클라우딩 펀드 플랫폼에서 두 차례에 걸쳐 펀딩 목표 2000% 이상 초과 달성했다.
맥주는 관련법으로 인해 폐기물로 분류돼 업사이클링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는데, 민 대표의 시도로 업사이클링이 주목받으면서 2020년 해당 법이 개정됐다. 그때부터 오비맥주와 맥주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인 맥주박으로 크래커, 셰이크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민 대표는 점점 라인을 확장해 현재는 밀기울, 케일, 사과 등 다양한 식자재에서 새로운 재료를 만들어냈다. 직접 밀기울로 만든 과자를 먹어봤는데, 일반 시중 제품과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다. 맛만 좋았다. 민 대표를 만나 푸드 업사이클링의 미래에 관해 물었다.
리하베스트 제품./사진=리하베스트 제공
-리하베스트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푸드 업사이클링'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회사로 알고 있다. 어떤 계기로 도전하게 된 건가?
"컨설팅 회사를 오래 다녔다. 식품회사 컨설팅을 할 때마다 부산물 이슈가 눈에 밟혔다. 한 회사에서는 원가 절감 프로젝트로 10억 원 정도를 절약했는데, 부산물로 약 40억~50억 원을 소비하고 있더라. 이미 제조 부산물에서 큰 비용이 사용된다는 걸 알고 있는 상태로, 한쪽에서는 음식이 매우 귀하고 다른 쪽에서는 버려지고 있는 구조를 마주했다. 아프리카로 출장을 갔는데 그곳은 굶어죽는 사람이 있는 매우 열악한 곳이었다. 며칠 뒤 프랑스와 일본에서 미슐랭 스타 식당을 방문하는 일정이 있었고, 식당 측에 하루 부산물이 얼마나 나오는지 물었더니 정확한 수치는 기억이 안나지만 매우 많았다. 부산물로 선순환 구조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2019년 말부터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푸드 업사이클링은 얼마나 친환경적인가?
"우리나라는 원료를 대다수 수입해, 가공 후 수출하다보니 제조 부산물이 매우 많았다. 국내 맥주와 식혜 부산물 발생량은 지속해 늘고 있는데, 2019년에는 약 42만 톤이 나왔고 그중 절반 이상이 폐기됐다. 환경부담금으로 환산하면 280억 원 정도다. 우리 회사에서 부산물을 업사이클링해 만든 친환경 식품 첨가 원료인 '리너지 가루'를 1kg 생산하면 부산물이 줄어 탄소 배출은 11kg, 물사용량은 3.7톤을 저감할 수 있다."
-푸드 업사이클링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수거가 가장 어려웠다. 먼저 어떤 부산물을 수거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했다. ▲물량이 많은지 ▲영양 성분이 높은지 ▲청결한지 ▲규제에 걸리지 않는지 등 네 가지를 기준으로 봤다. 축산은 어려운 점이 많아서 먼저 농산물에 도전하기로 했고, 이 중에서도 곡물류에 집중했다. 또 부산물은 버려지는 것이다 보니, 관리하는 프로세스가 없었다. 그래서 아예 수거 트럭을 개발해 디자인 특허를 냈다. 품질 관리를 하면서, 빠르게 대량의 부산물을 수거할 수 있도록 했다. 트럭 내부에 온도를 높이거나 낮춰 균이 번식하지 못하도록 관리한다. 부산물은 나오자마자 당일 수거한다."
-리너지 가루는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는가?
"현재 업사이클링하는 부산물은 맥주박, 식혜, 밀기울, 케일 등 다양하게 있는데, 밀기울이 메인이다. 부산물은 리하베스트의 푸드 업사이클링 특허 공정을 거쳐 다양한 분야의 원료가 된다. 카페, 식품 기업 등에 B2B로 제공되거나, 자사 과자·빵·프로틴바 등으로 판매된다. 자체 브랜드에서는 100% 밀가루를 대체할 수 있는 제품도 만들고 있다. "
-맛·영양성분·조리 방법 등에 차이는 없는가?
"맛은 큰 차이 없다. 해당 향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업사이클링 제품도 친숙하게 받아들였다. 밀기울은 대중적으로 선호도가 높았다. 영양 성분은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는다. 특히 식이섬유 함량은 매우 높은 편이다. 최근에는 프로틴 함량이 높은 소재를 활용한 제품을 내고 있다. 조리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국외에는 이런 회사가 많은가?
"대규모로 하는 곳은 많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세 개 이상 부산물을 업사이클링 할 수 있는 곳은 우리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인도네시아, 미국, 캐나다 등에서 우리 공장 벤치마킹을 오기도 한다"
리하베스트 민명준 대표가 기자에게 리너지 가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리하베스트 제공
-지금 소비자 푸드 업사이클링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
"매우 갈린다. 20~30대는 친환경적인 제품을 트렌드로 보기도 하고,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고 여겨 긍정적으로 본다. 다만, 아직 대다수에서는 푸드 업사이클링에 대한 개념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소비자 피드백 중에 좀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초창기인 2020년에는 '사람을 위한 사료를 만들었네' 등 마음 아픈 피드백이 있었다. 지금은 친환경을 위해 구매했다가, 맛있어서 제품을 좋아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이런 피드백이 기운을 북돋는다."
-푸드 업사이클링 관련해서 필요한 정책 개선 방향은 무엇인가?
"식약처 법상 업사이클링과 관련된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 시청의 위생과 담당자 재량으로 진행되다 보니, 어떨 때는 매우 엄격하고 어떨 때는 규제가 없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또 푸드 업사이클링을 그린 워싱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인증제를 뒀으면 좋겠다. 푸드 업사이클링만이 어렵다면 푸드테크 인증이 있었으면 한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푸드 업사이클링 1.0은 해외 진출 단계로 넘어갔다. 올해 말까지 미국에 법인 설립해 내년 말까지 국제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예정이다. 인도네시아에도 영업점이 나왔다. 이제, 식품 부산물로 식품만 만들던 것에서 넘어, 소재까지 확장해 제조하는 푸드업사이클링 2.0시대를 열어보려고 한다. 부산물은 유통기한이 매우 짧아, 식품으로 확장할 수 있는 영역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CNF(셀룰로오스 나노섬유)를 만들어 자동차 내장제 등 다양한 소재로 사용해 보려고 한다. 원래 CNF는 나무를 벌목해 만드는데, 우리는 부산물을 이용하다 보니 가격 이점도 있고 친환경적이다. 3~4년 뒤에 상용화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리하베스트가 추구하는 지속 가능한 식품 생태계란?
"선순환 구조가 제일 중요하다. 부산물이 정말 많이 나오는 데 이걸 매립하는 건 자원 낭비라고 본다. 리하베스트라는 이름도 결국 재수확이라는 뜻인데, 모든 부산물이나 음식물을 재수확해 새로운 선순환 가치를 만드는 게 가장 큰 목표다."
-푸드 업사이클링 시장의 미래는?
"푸드 업사이클링은 리하베스트가 아니더라도 뉴노멀이 될 것으로 본다. 탄소 중립을 식품 업계에서 실현하는 가장 쉬운 길은 사실 푸드 업사이클링이다. 서구권에서는 이미 법제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앙 정부부터 지자체까지 우리나라에서도 산업이 태동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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